오피니언

그들에게 교육은 없다

[모두다인재 칼럼] 최중혁의 교육프리즘


두 가지 얘기가 들린다. 하나는 당청에 내년 총선 필승조가 가동되고 있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보수 결집의 도구로 삼았다는 얘기.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숙원으로 여겨왔고, 드디어 실행에 옮겨졌다는 얘기.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결론에 어느 쪽이 더 영향력을 끼쳤을까. 친한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니 “한 가지 확실한 건 김상률 수석, 이기봉 국장 선에서 결정된 일은 아니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보다는 훨씬 윗선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

자칭타칭 교육계 ‘선수’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분석해 보니 대략 이런 추정에 도달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알려진 것보다 매우 강했고, 이를 읽은 필승조가 ‘국정화’ 이슈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양한 근거들에 바탕을 둔 분석이지만 아직까지는 추정에 가깝다. 진실은 좀 더 시간이 흘러야 정확히 파악될 것이다.

배경이야 어찌됐든 ‘교과서 갈등’ 정국으로 정치권은 여야 모두 내심 웃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청와대) 간 갈등 뉴스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야권 비주류 간 갈등 뉴스도 마찬가지다. ‘한국사 교과서’라는 정쟁거리를 앞에 두고 여야 모두 내부 갈등을 추스르고 결집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했던 정치색깔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이슈를 만나 빨강과 파랑 두 색깔로 홍해처럼 갈라졌다.

국정화 결정이 우리 사회 가뜩이나 심한 좌우 이념대립을 더 악화시킬 것이란 예측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당청은 ‘국민통합을 위해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운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출입기자로서 여러 루트를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정화’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나쁘게 보면 정치인 특유의 ‘결정장애’였고, 좋게 보면 교육문제를 교육문제로 접근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는 평소 교육문제를 정치문제나 경제문제로 풀려고 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피력해 왔다. 당청은 진보교육감들이 미워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예산에 떠넘기려 했지만, 황 부총리는 아이들 교육문제이니 만큼 중앙예산도 지원하자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대학등록금 문제, 대학 구조개혁 문제, 무상급식 문제 등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덕분에 ‘친박에 찍혔다’는 소문이 관가에 알음알음 돌았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교육적 관점’을 견지하려 애썼으나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과 필승조에 눌렸다는 게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학자 출신이 아닌, 6선을 바라보는 노련한 의원이니 정치적 접근의 필요성에 스스로 적극 동참했다는 시각도 있다.

뭐가됐든 교육문제를 교육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정치문제로 접근한 대가는 혹독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론 수렴과정이나 국민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쪽의 일방적 힘의 논리로 추진된 정책은 결코 장수하지 못했다. 정권교체 등 조건이나 환경이 바뀌면 바로 원상 복구되기 십상이었다. 특히나 이념 문제가 걸린 정책은 더 그랬다. 갈등과 혼란은 필연적으로 분열과 비용을 수반한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박근혜정부는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를 가장 큰 공약으로 내세우고 당선된 정부다. 그럼에도 집권초 경제민주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일일이 사례를 열거할 필요도 없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사에 이는 잘 드러나 있다. 여당 내의 허탈감이 이 정도일 진데 일반 국민들의 허탈감은 말해 무엇 할까.

박근혜정부가 이제 또 하나의 큰 공약, 국민대통합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개인적인 숙원, 총선 승리라는 눈앞의 이익을 쫓아 국민들을 홍해처럼 갈라놓았다. 누군가는 자신이 모세가 된 양 득의양양할 것이다. 정치판이 장기판처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믿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장기판 말이 되어 국정화 관련 기사를 매일 수백개씩 쏟아내는 기자들의 처지가 처량하다. 이런 자괴감은 비단 기자만 느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