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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코어 사업, 인문학 강국 출발점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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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진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겁니다."



인류라는 단어가 이토록 거룩하고 숭고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지난 12일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3연패를 한 뒤 꺼낸 말이다. 패배의 탓을 인류가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이 9단의 겸손함에 대중은 감동했다. 또 인간의 도전정신에 열광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주목받는건 인간의 정신(멘탈)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아무리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점에 이른다 해도(끝은 없겠지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기계와 다른 점은 뭘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번 이세돌-알파고 대국만 봐도 그렇다. 한 인문대학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대결은 "'인간다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평했다.



우리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점에서 교육부 '코어 사업'의 방향성은 옳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기초학문인 인문학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고 낮은 취업률로 인해 대학에서 외면받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코어사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인문학 지원을 통해 취업률을 높이고 향후 10년내, 인문학 분야 세계 100위권 안에 10개 대학이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코어사업은 이공계 중심의 학사구조 개편·정원조정에 무게를 둔 '프라임사업'의 보완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장 고사위기에 놓인 인문학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실제로 정부가 대학 인문분야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투자(올해 예산 600억원)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참가하는 대학의 상당수가 '기초학문 심화' 보다는 경영·이공계 등 다른 학문과의 융·복합 학과 개설(인문기반 융합 모델)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스럽다. 인문학이 설 자리에 융·복합 과목들이 들어서면서 자칫 순수 인문학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어 사업이 '인문학 강국'의 출발점이 되게 하려면, 무엇보다 취업률 같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할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문학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끊임없이 토론하고 고민해 인문강국이 될 지도를 그려가야 한다. 재정지원 종료와 함께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뚝' 끊기질 않길 바란다.